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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의병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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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영당 (봉양읍 공전리 475 장담마을) 상세보기 - 제목,작성자,내용,첨부파일 정보 제공
제목 자양영당 (봉양읍 공전리 475 장담마을)
작성자 관리자
"자양영당"은 구한말 쓰러져 가는 나라를 바라보며, 한 목숨 바쳐서 풍운을 막아보고자 분연히 일어섰던 "조선 의병"의 넋이 흐르는 곳으로서 굽이굽이 예순 굽이길의 박달재를 넘어, 제천시의 관문에 나지막이 자리잡은 곳이다.언뜻 보면, 평범하고도 아늑한 고을 한 쪽에 모셔진 사당과 같은 느낌이 들지만 촘촘히 살펴보면 역사의 뒤안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범상치 않은 기운이 스며 있는 곳이 바로 자양영당(紫陽影堂)이다.

건물구조는 목조기와집으로 전면 3칸, 측면 2칸이며 앞에는 뒷마루가 있는 팔작집이다. 박약재, 극복재, 자양서사, 자양영당 현판이 있으며 특히 삼강오륜에 대한 예의와 풍습을 백성들에게 계몽하기 위해 만든 화동강목 판목 1,513매가 소장되어 있다.의병의 얼이 깃든 이곳을 성역화하기 위하여 대단위 공사가 2001년 완공하여, 의병의 의미를 재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영당은 조선시대 후기 대유학자인 이항로 선생의 수재자인 성재 유중교(1821~1893) 선생이 조선 고종 26년(1889년)에 창주정사를 세워서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며, 후에 자양서사로 바뀌었다.

고종 32년(1895년)에는 의병장인 의암 유인석이 8도 유림 600여명을 모아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발의해, 전국적으로 의병창의를 처음 일으켰던 곳으로, 고종43년(1906년) 4월에 유림에서 자양영당을 창건하였다.
이후 주자(朱子)ㆍ우암 송시열ㆍ화서 이항로ㆍ성재 유중교의 영정을 봉안했고, 후에 의병장 유인석 선생ㆍ이직신의 영정을 함께 모신 의병창의의 성지로 인식되어 왔다. 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제는 조선에 대한 침략을 노골화하며, "단발령"을 단행하는 문화말살정책을 강요했다.당시에 제천의 장담마을에는 유중교 선생의 제자인 화서학파들이 모여서 의병봉기를 결의하고 원주 안창에서 첫 의병을 일으켜 단양지역 전투에서 첫 승리를 얻게 된다. 이듬해 유인석선생을 의병장으로 추대한 제천의병은 충주와 제천을 넘나들며 일제에 항거했고, 이 항거가 시발점이 되어 뒷날 무장독립군 창설의 모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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